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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개 시도의회의장협의회가 지난해 9월 30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특별사법경찰제도 도입 촉구 건의안’을 의결했다. |
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에 특별사법경찰권(이하 특사경)을 부여하자는 논의가 최근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목적은 불법 개설 의료기관, 이른바 사무장병원에 대한 실질적인 단속과 수사 강화를 위해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제도가 장기요양기관까지 자동으로 확대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속 대상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면, 특사경 제도는 고령자 돌봄의 최전선에 있는 장기요양기관의 존립까지 위협할 수 있다.
사무장병원은 의료인이 아닌 자가 의료인 명의를 빌려 개설한 불법 의료기관이다. 이들은 수천 건의 허위진료와 보험사기를 저지르며 건강보험 재정을 심각하게 침해해 왔다. 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약 2조 9천억 원이 불법 청구됐고, 이 가운데 회수율은 8%대에 불과하다. 이는 강력한 단속 권한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기에 충분한 근거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를 장기요양기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의료기관은 구조적으로 영리추구가 가능하지만, 다수의 장기요양기관은 지역사회 기반의 비영리 혹은 소규모 사회복지시설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요양기관은 인력과 재정이 열악한 상태에서 법과 규정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더구나 현행 제도에서 급여비용 부당청구 의심이 있을 경우, 공단은 지자체를 통해 ‘현지조사’라는 행정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지자체가 조사계획을 수립하고, 시설에 통지하고, 서면 및 대면조사를 실시한 후에야 행정처분이나 환수 조치가 가능하다. 이처럼 절차가 존재하는 이유는 기관의 방어권을 보장하고, 조사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특사경이 도입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공단은 지자체를 거치지 않고도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으며, 현장 방문은 물론, 압수수색, 진술서 확보, 전산 기록 수거 등 형사 절차 수준의 조사를 바로 착수할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과거에는 행정조사로 끝났을 상황이 이제는 건보공단 특사경의 ‘즉시 형사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이다.
장기요양기관 입장에서는 사실상 ‘저승사자’를 만나는 것과 같은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루 전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시설이, 공단 조사팀의 전화 한 통으로 순식간에 피의자 조사와 법적 책임의 갈림길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양보호사의 휴무일을 착오하여 청구가 하루 앞서 입력되었다거나, 복지용구 제공 시 실물 전달은 되었지만 수령서류에 서명이 누락된 경우 등은 현재 행정지도나 경고로 충분히 처리되는 사례다. 그러나 특사경이 개입하게 되면 이조차도 사기 또는 문서 위조의 혐의로 조사받을 수 있다. 이는 행정력 강화를 위한 제도가 오히려 돌봄 현장을 옥죄는 족쇄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장기요양기관은 단순한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라, 고령자들의 생활공간이자 마지막 삶의 터전이다. 여기에 ‘형사 수사기관’의 강제력이 개입된다면, 보호자와 입소자에게도 불필요한 불신과 불안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시설의 문서보관, 청구절차, CCTV 운용, 종사자 관리까지 모두 수사 전제의 기준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돌봄의 본질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공단이 그간 부당청구 모니터링 시스템과 평가 제도를 통해 기관 점검을 강화해온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문제는 기존 감사·행정지도·급여 환수 등으로 해결 가능하다. 그런데도 형사처벌까지 전제로 한 특사경을 도입한다면, 이는 모든 장기요양기관을 ‘잠재적 범죄 의심 대상’으로 간주하는 위험한 신호가 될 수 있다.
물론 부정 청구는 근절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모든 기관에 형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 장기요양은 민간 의료영역과 달리, 공공성과 복지성이 강한 영역이다. 특히 현장 인력은 고령자와의 정서적 교류, 돌봄의 지속성, 감정노동 등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도 깊은 소명을 다하고 있다. 이들에게 형사적 압박까지 부과된다면 요양 인력 유입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특사경 제도는 건강보험 재정 누수 방지를 위한 하나의 도구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도입은 반드시 ‘제한적이고 명확한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장기요양기관까지 이를 일괄적으로 적용한다면, 결과적으로 선의의 기관들까지 법적 리스크의 덫에 빠뜨릴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 특사경 제도 도입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 단속이 아닌 지원과 예방 중심의 접근이 장기요양기관에는 더 적합하다. 단속 강화보다 중요한 것은, 정직하게 운영되는 수많은 요양시설이 제도 안에서 존속하고 지속 가능한 돌봄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