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요양병원 참사 11년, '방화'가 아닌 '방치'가 부른 인재(人災)
  • "81세 치매 환자가 방화" 21명 사망한 요양병원 화재
  • 2014년 5월 28일, 새벽 0시 20분. 전남 장성의 한 요양병원 별관에서 시작된 불은 단 7분 만에 비극이 되었다. 그날의 화재는 21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남겨진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특히 고령 환자가 대다수였던 요양병원이라는 특수한 환경은 빠른 대피를 어렵게 만들었고, 이 비극은 단순한 사고가 아닌 예고된 참사로 남게 되었다.

    이 사건의 방화범은 다름 아닌 81세의 치매 환자였다. 그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불을 질렀고, 그 순간 병원 내에는 스프링클러도, 즉각 경보를 울릴 장치도 없었다. 이후 수사 결과, 그는 심신상실이 아닌 제한적 판단 능력을 가진 상태로 결론 내려졌고,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을 앞두고 건강 악화로 사망하면서 방화 사건의 공소는 기각되었다.

    방화범 한 사람의 손에 의해 발생한 일처럼 보였지만, 이 참사의 본질은 개인의 행위가 아니었다. 화재를 막지 못한 것은 노쇠한 환자의 잘못이 아니라, 노인의 특성과 위험성을 관리하지 못한 제도와 시스템의 부재였다. 방화라는 물리적 행위보다 더 깊은 책임은 병원 운영진에게 있었고, 실제로 병원 이사장은 징역 3년, 행정책임자는 집행유예 등의 법적 처벌을 받았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여러 질문을 던졌다. '치매 환자를 보호하는 구조는 적절했는가?', '심야 시간에도 대응 가능한 인력과 시설은 갖춰져 있었는가?', '스프링클러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그리고 가장 본질적인 질문, '우리는 노인의 생명을 얼마나 안전하게 지키고 있는가?'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이 사건 이후 법령은 개선되었다. 요양병원은 규모에 상관없이 자동화재탐지설비와 자동화재속보설비를 설치해야 하며, 600㎡ 미만 공간에도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의무화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구조는 탄탄해졌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여전히 느슨한 관리와 낮은 경각심이 공존한다.

    치매 환자와 고위험군 어르신은 요양시설에서 ‘특수 보호 대상’이다. 이들은 판단력과 행동 제어 능력이 현저히 낮고, 스스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상황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시설에서는 이들을 위한 위험 사전 감지 체계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단순히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소방훈련을 했다는 서류만으로는 어르신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 일상 속 행동 변화와 감정 상태를 관찰하고, 평소와 다른 징후를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는 훈련된 인력과 체계적인 모니터링 시스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야간 근무자 배치 기준 역시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심야 시간은 인력도 적고 긴장감도 낮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시간대다. 2014년 장성 화재도 자정이 넘은 시각에 발생했다. 최근 평가 기준에 따라 인계인수서를 작성하고 야간점검일지를 기록하는 것이 의무화됐지만, 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의 진실성과 감독의 일상화이다. 문서를 위한 문서가 아니라, 생명을 위한 점검이 되어야 한다.

    CCTV는 과거를 되짚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실시간으로 상황을 감시하고, 이상 징후를 발견하면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예방 도구로 활용되어야 한다. 특히 인권 침해를 우려해 CCTV 모니터링을 소홀히 하는 경향도 있지만, 인권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25년 현재, 우리는 더는 같은 비극을 반복할 수 없다. “81세 치매 환자의 방화”라는 문장은 그 자체로 비정상적 사회 구조의 경고문이다. 안전은 시설의 외형이 아니라 운영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치매 환자 한 명, 간호조무사 한 명, 그리고 병상에 누워있던 80대, 90대 어르신들의 생명은 모두 우리 사회가 조금 더 경계했더라면, 조금만 더 주의했더라면 지킬 수 있었던 소중한 존재였다.

    시설은 건물이 아니라 신뢰다. 그리고 신뢰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기록, 교육, 점검, CCTV 모니터링, 야간 인계인수서, 그리고 노인학대 예방 교육 하나하나가 쌓여야만 비로소 신뢰가 만들어진다. 다시는 “21명 사망”이라는 기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오늘도 현장을 되짚고 있어야 한다.

  • 글쓴날 : [25-05-29 23:21]
    • 김호중 기자[gombu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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