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효진 칼럼] 코스모스 꽃밭 이야기
  • 사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강원지부 장효진 지부장
    (사)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강원지부 장효진 지부장

    춘천 의암호가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우리 요양원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아흔 분의 어르신이 계신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유유히 흐르는 의암호와 사계절의 색을 달리하는 산자락이 한눈에 펼쳐진다. 

    우리는 자연이 매일 아침 건네는 이 풍경을 어르신들께 선물처럼 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어르신들께 안정과 치유를 주는 일상의 일부다.

    하지만 몇 해 전, 우리 요양원에 위기가 닥쳤다. 의암호와 요양원 사이에 대규모 건축개발이 추진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형 건물이 들어서면 어르신들의 창밖 풍경은 단절되고, 평온한 일상이 무너질 위험에 처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지자체와의 긴 협상에 나섰고, ‘조망권을 지켜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프랭카드를 걸고 진정성을 전했다. 관공서를 수차례 방문하고, 주민들과 연대하며 수개월에 걸친 조율 끝에 결국 개발 계획은 조정되었다. 대형 건물 대신 글램핑장과 퍼블릭 골프장이 들어서며 조망은 유지되었고, 어르신들의 창밖 풍경은 그대로 지켜낼 수 있었다.

    더불어 뜻깊은 변화도 함께 찾아왔다. 해당 부지에 시에서 코스모스를 심기로 한 것이다. 코스모스의 꽃말은 '우주의 질서와 조화'다. 불볕더위가 지나고 가을이 오면 의암호 곁에는 분홍빛 코스모스 물결이 바람 따라 일렁일 것이다. 

    우리는 이 꽃밭을 어르신들과 함께 산책하며 마음을 나누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자연은 늘 말없이 우리를 보듬고, 그 안에서 어르신들은 젊은 날의 기억을 되살리고,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춘천시의 배려에 감사드린다. 춘천시의 효 행정 덕분에 어르신들도 기뻐하심을 이글을 빌어 전하고자 한다.

    우리 요양원은 춘천의 신선한 식재료를 이용한 건강한 로컬푸드를 매일 식탁에 올리고 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반찬은 어르신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지역 농가와의 협력은 식탁의 신뢰로 이어진다.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건강을 책임지는 일은 단순한 조리 이상의 의미다.

    이 모든 일상의 중심에는 오래 함께해온 든든한 동료들이 있다. 우리 요양원에는 15년 이상 근속한 장기 직원들이 다수다. 이들은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하고, 긴 밤을 함께 지키며, 어르신들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이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며 쌓아온 경험과 애정은 어느 시스템보다 강한 돌봄의 기반이 된다.

    이곳은 요양원이면서, 또 하나의 마을이고, 삶의 이야기들이 피어나는 정원이다.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그날, 우리 요양원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그것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과 환경이 어우러진 진짜 복지의 풍경이다.


  • 글쓴날 : [25-06-14 13:58]
    • 편집국 기자[gombu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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