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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현재 경민대학교에서 사회복지사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 |
글. 하이케어솔루션 김미란 실장
4년 전, 나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780시간의 병원 실습을 이수해야 했다. 주중에는 회사 업무를 마치고 곧장 간호학원으로 향해 필기 수업을 들었고, 주말과 휴일에는 병원 실습으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 당시 나는 단지 주어진 시간을 채우기 위해, 주어진 의무를 끝내기 위해 병원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내게 이렇게 큰 질문을 남길 줄은 미처 몰랐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노인요양병원에서 실습을 시작하며, 나는 자연스레 입원해 계신 어르신들과 마주했다. 병원의 특성상 의식 없이 누워 계신 어르신들이 많았지만, 장기 치료 중인 분들과 대화를 자주 나눌 수 있었다.
처음엔 그저 시간을 떼우기 위해 병원에 나가던 내가 어느 순간, 그분들과의 대화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르신들 속에서 나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보고 있었고, 그리움과 애정이 내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음을.
어릴 적, 바쁜 아버지와 엄한 어머니 밑에서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사랑의 전부였던 할아버지. 세무공무원이셨던 그분은 총명하고 따뜻하셨고, 내 어린 시절 숙제와 공부를 늘 함께해 주셨다. 돌아가신 지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그리움은 여전하다. 그래서인지 병원에서 마주한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분들에게 더 살갑게, 더 따뜻하게 다가가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는 달랐다. 주말마다 강행군에 지쳐가는 나, 병마와 싸우며 예민해진 어르신들, 그리고 시간에 쫓겨 충분히 곁에 머무를 수 없었던 상황은 내가 꿈꿨던 따뜻한 교감을 방해했다.
그래도 나는 한 마디라도 더 말을 건네기 위해 애썼고, 그 짧은 말 속에서 어르신들은 긴 이야기를 꺼내셨다. 가슴에 맺혀 있던 지난 세월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 당장 필요한 것들까지.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최선을 다해 웃어드리고, 공감해 드리려 했다. 하지만 늘 마음에 남은 것은 ‘조금 더, 조금 더 따뜻하게 해드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화를 나누던 분이 며칠 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삶의 허망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미래를 생각하게 됐다. 언젠가 나 역시 늙어가고, 병들고, 서럽고, 외로울 것이다. 마음은 젊지만 몸과 머리는 뜻대로 따라주지 않을 것이다.
치매에 걸려 사랑하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 내 아들은 얼마나 슬퍼할까. 그 슬픔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현실이 된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노인은 단지 늙은 사람이 아니다. 한 시대를 살아낸 한 인간이다. 나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숙제를 본다. 늙어가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길이지만,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노인들이 덜 아프고, 덜 서럽고, 덜 외로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요양시설의 한계, 돌봄의 부족, 사회적 무관심은 결국 우리 모두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나는 간호조무사 실습을 통해 깨달았다. 노인을 따뜻하게 대하는 것은 곧 우리 모두의 미래를 따뜻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지금 우리가 노인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결국 우리 사회의 품격을 결정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