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장기요양기관이 급식을 외부에 위탁했더라도 일부만 위탁한 경우에는 조리원을 배치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장기요양기관의 인력배치 기준 해석과 급식 위탁의 범위를 둘러싼 현장의 혼란에 법적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향후 요양시설 운영 실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법원 “조리원 없는 상태에서 일부만 위탁…인력배치기준 위반”
대법원 제3부(재판장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 10월 16일, 협동조합 ○○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장기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소송(2024두46361) 상고심에서, “인력배치기준 위반이 있었다는 원심의 판단은 법리오해”라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이 사건은 울산 북구의 한 주·야간보호시설이 조리원을 따로 고용하지 않고 일부 급식을 위탁하거나 자체 조리한 것을 두고, 급식 위탁이 인정되는 ‘조리원 배치 면제 요건’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해당 시설이 조리원 없이 운영하면서도 급여비용과 인력 가산금을 부당하게 수령했다며, 약 6억 원 상당을 환수하는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원심은 “실제 급식 질 유지돼…위반 아냐” 판단
2심을 맡았던 부산고등법원은 환수 처분 일부를 취소하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해당 요양기관이 주 6일 외부 위탁 급식을 이용했고, 일부 식사는 전담 인력을 통해 제공되었으며, 급식의 품질·영양 수준이 유지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예외 규정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원심 판단을 법리 오해로 보고 파기했다.
대법원 “전담 조리원이 아닌 다른 인력이 급식을 하면 규범적 평가 달라져”
대법원은 판결에서 “주·야간보호기관이 급식 일부만 위탁하고, 조리원이 아닌 보조원(운전사)이 직접 밥을 짓는 등 급식 업무를 수행한 경우에는, 조리원 상시 배치와 규범적으로 동등하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각 직종의 전문성을 존중한 인력 배치가 이루어져야 하며, 단순히 급식이 제공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인력 기준 충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또한 대법원은 일부 위탁 급식만으로 전체 위탁에 준하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보조원이 본연의 송영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급식 업무에 투입되었다면, 인력 배치 기준과 장기요양급여 산정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공단의 환수처분이 정당할 수 있다는 전제로 원심을 파기하고, 관련 쟁점을 다시 심리하도록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시설들 “현장 현실 무시한 엄격 판단”…공단 “기준 명확해져 환수기준 강화 가능”
이번 판결을 두고 일선 장기요양기관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 급식 품질이 유지되었고, 수급자 만족도도 높았음에도 단지 일부 식사를 자체 조리했다는 이유로 수억 원 환수는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번 판결로 인력배치 기준 해석에 대한 법적 기준이 명확해졌다며, 향후 유사사례에 대한 제재와 환수 처분 근거가 강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의 혼란 줄이려면…제도 보완 필요성 제기돼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시설운영 실태에 맞춘 제도 정비와 가이드라인 명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박병철 변호사는 “급식 위탁 형태는 시설 규모나 지역 여건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될 수밖에 없다. 조리원 배치 예외 기준이 너무 협소하게 해석되면, 오히려 형식적 기준 맞추기에 급급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번 판결은 법적 기준을 엄격히 제시한 의미 있는 판결이지만, 동시에 현장의 현실을 반영한 세부 기준과 제도적 유연성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