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노인학대 신고를 위해 타인의 대화를 몰래 녹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지난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이 요양현장 내 종사자 간 불신을 조장하고, 불법 녹음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노인학대 증거 확보 어려워”…녹음 허용 추진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제3자가 본인의 대화 당사자가 아닌 경우, 타인의 대화를 비밀리에 녹음하거나 청취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는 개인의 사생활과 대화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김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서 "스스로 학대를 방어하기 어려운 노인의 경우, 학대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며 “가족이나 요양보호사 등 제3자의 녹음자료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김 의원은 노인학대를 신고하거나 증거를 수집하려는 자에 한해 타인의 비공개 대화를 녹음하거나 청취할 수 있도록 하고, 이 자료의 법적 증거능력도 인정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해당 조항은 신설되는 제39조의6 제4항에 규정된다.
또한 개정안은 법 시행 당시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도 소급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입법 취지 이해되나…현장은 “도 넘는 감시사회 우려”
해당 법안의 취지는 분명하다. 노인학대는 은폐되기 쉽고 피해자가 증언이나 자료 확보를 스스로 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정한 예외를 통해 제3자가 수집한 녹취 증거의 법적 효력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실제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서는 특정한 조건 하에 이러한 녹취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사례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 요양 현장에 미칠 영향이다.
요양보호사와 간호사 등 장기요양 종사자들은 법안이 사적 공간 내 녹음 행위를 조장함으로써, 직장 내 감시와 통제가 만연한 환경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법을 악용해 불만이나 사적 분쟁을 의도적으로 녹음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일부 상급자나 가족에 의한 무분별한 몰래 녹음이 이뤄질 경우, 노사 간 신뢰 붕괴와 업무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요양시설 관계자는 “노인인권 보호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현장 종사자 전체를 잠재적 가해자로 만드는 방향이어서는 안 된다”며 “감시는 예방이 아니라 불신만 키울 뿐”이라고 밝혔다.
"법은 명확해야…남용 소지 최소화 필요"
박병철 변호사는 "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녹음 요건과 증거 사용 절차에 대한 구체적이고 엄격한 기준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외를 허용하되, 오용과 남용을 철저히 방지할 장치가 없다면 불법 사찰,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행 노인복지법상 이미 신고자 보호, 응급대응, 학대 판별 등을 위한 제도들이 마련돼 있는 만큼, 이러한 제도 보완을 통한 피해 예방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신고 장려? 불신 조장?”…입법 앞서 균형 잡힌 논의 필요
노인학대를 막기 위한 법적 제도 강화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제도의 일방적 강화가 현장 노동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감시를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이번 김예지 의원의 법안은 선의의 입법이라기보다, 요양 현장 내 인권과 신뢰의 균형에 대한 보다 정밀한 고민과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입법 과제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