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스코틀랜드 법원이 질식 위험이 있는 96세 어르신을 식사 중 20분간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케어홈 운영사에 190만 파운드(약 33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는 단순한 과실이 아니라 명확한 케어 플랜을 무시한 시스템 실패로 판단된 사례로, 장기요양 현장의 안전 관리에 중요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명확한 케어 플랜 있었지만 20분간 방치
영국 BBC 뉴스에 따르면, 2025년 10월 20일 스코틀랜드 인버네스 지방법은 영국 최대 케어홈 운영사 중 하나인 HC-One에 대해 190만 파운드의 벌금을 선고했다. HC-One은 영국 전역에 190개의 케어 시설을 운영하는 대형 기업으로, 본사는 잉글랜드 달링턴에 위치해 있다.
사망한 Peggy Campbell 씨(96세)는 2019년 인버네스 레이그모어 병원에서 크래들홀 케어홈으로 전원될 당시 명확한 케어 지침이 있었다. 그녀는 질식 위험이 높아 식사 중 반드시 감독이 필요하다는 케어 플랜이 수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2022년 6월, Campbell 씨는 저녁 식사로 제공된 마카로니와 칩스(감자튀김)를 자신의 방에서 혼자 20분간 방치된 채 먹다가 질식했다. 발견 당시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응급조치에도 불구하고 사망했다.
선임 직원 부재, 18세 신입과 임시직만 근무
사건 당일 케어홈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선임 직원이 몸이 아파 조퇴한 상태에서, 18세 신입 요양보호사와 2명의 임시직 직원만이 유닛(병동)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다른 입소자들이 도움을 요청하면서 주의가 분산되었고, Campbell 씨의 식사를 감독할 여력이 없었다.
Robert Frazer 판사는 판결문에서 18세 요양보호사와 임시직 직원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대신 "명확하고 명백한 케어 플랜이 있었음에도 이를 이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은 회사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판사는 "입소자가 사망한 것은 매우 심각한 범죄"라며 "케어 플랜에는 식사 감독과 관찰이 명확히 명시되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고의적 행위나 "법의 명백한 무시"는 아니지만, 회사의 보건안전 실패 수준을 최고 등급으로 평가했다.
6년간 5번째 사망 사고… "반복되는 문제"
법원이 특히 주목한 것은 HC-One의 반복적인 사망 사고 이력이었다. Frazer 판사는 "나의 진정한 우려는 전과 기록"이라며 "회사는 지난 6년간 스코틀랜드에서 4건의 유사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벌금은 20만 파운드에서 80만 파운드(약 3.5억~14억 원)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HC-One이 스코틀랜드 케어홈에서 받은 6년간 5번째 사망 관련 유죄 판결이다. 이는 단순한 개별 사고가 아니라 기업 차원의 시스템 문제가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장기요양 현장에 주는 5가지 교훈
스코틀랜드 사례는 한국 장기요양 현장에도 중요한 교훈을 제시한다.
교훈 1. 케어 플랜은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
Campbell 씨에게는 "식사 중 감독 필요"라는 명확한 케어 플랜이 있었다. 그러나 인력 부족과 업무 과중으로 이행되지 못했다. 케어 플랜은 서류상 형식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안전 지침이다.
국내 장기요양기관도 질식 위험이 있는 입소자에 대해서는 개별 급여 제공 계획서에 명확히 기록하고, 식사 시간에 반드시 직원이 관찰할 수 있도록 근무 배치를 조정해야 한다.
교훈 2. 인력 배치는 '숫자'가 아니라 '역량'이다
사건 당일 18세 신입 직원과 임시직만 근무한 상황은 법적 인력 기준은 충족했을 수 있지만, 실질적 돌봄 역량은 부족했다. 특히 선임 직원의 부재는 위기 상황에서 판단력과 대응력 저하로 이어졌다.
한국도 법정 인력 배치 기준을 충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야간·주말·공휴일에도 경험 있는 직원이 배치되도록 근무표를 짜야 한다. 신입 직원만으로 유닛을 운영하거나, 임시직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위험하다.
교훈 3. 질식 고위험 입소자는 별도 관리 체계 필요
질식 위험이 높은 입소자는 일반 입소자와 동일하게 관리해서는 안 된다. 영국 법원은 "명확한 케어 플랜을 무시한 것"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교훈 4. 반복 사고는 '시스템 문제'의 신호다
HC-One은 6년간 5번의 사망 사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는 개별 직원의 과실이 아니라 기업 차원의 시스템 문제가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교훈 5. 코로나19는 면책 사유가 아니다
HC-One 측은 코로나19로 인한 인력 부족을 변론 사유로 제시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기 상황에서도 입소자의 안전은 최우선이어야 하며, 인력이 부족하면 입소 정원을 조정하거나 임시 인력을 보강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인력 부족, 재정 어려움, 외부 환경 등은 안전 의무를 면제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일수록 안전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
벌금 33억 원, 그러나 생명은 돌아오지 않는다
영국 법원이 부과한 190만 파운드(약 33억 원)의 벌금은 영국 케어 산업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어떤 벌금도 잃어버린 생명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한국 장기요양 현장도 질식 사고는 매년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 식사 중 감독 소홀, 부적절한 음식 제공, 응급 대응 지연 등이 원인이다. 이는 예방 가능한 사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