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는 기억만 앗아가는 병이 아니다. 재산도 함께 가져간다.
최근 금융업계 분석에 따르면, 일본에서 인지 기능 저하 징후를 보이는 고령자들이 보유한 유동 자산 규모가 315조 엔(약 2,80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치매가 진행되어 판단 능력이 저하되면 금융기관이 해당 계좌의 입출금·해약 등 거래를 제한하게 된다. 이른바 '자산 동결' 현상이다. 당장 요양비용이 필요해도 돈을 꺼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틈을 노리는 금융 사기와 자산 착취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지 능력이 저하된 노인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불필요한 금융상품 판매, 심지어 가족에 의한 재산 탈취 사례도 끊이지 않는다.
성년후견제도, 보호막인가 새 장벽인가
일본은 2000년부터 치매 노인의 재산을 법원이 지정한 후견인이 관리하는 성년후견제도를 운영해왔다. 그러나 제도 도입 25년이 지난 지금, 심각한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법원이 지정한 전문 후견인들이 재산 '유지'에만 집중하면서, 정작 어르신의 일상적인 소비나 의사결정은 극도로 제한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치매 환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경제적 자유를 박탈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존중, 후견인 육성 체계 강화, 지역 연계 네트워크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제도 전면 개혁을 추진 중이다.
한국의 '치매 머니'는 154조 원
한국의 상황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치매 환자 보유 자산은 이미 154조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요양기관 입소 이후 재산 관리 문제로 가족 간 분쟁이 발생하거나, 어르신이 스스로 이상한 계약서에 서명하는 일도 현장에서 심심찮게 목격된다.
시설측이 단순히 돌봄 서비스 제공자를 넘어, 어르신의 권리와 자산을 지키는 연계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