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시설에서 운영비 절감을 위해 선택하는 ‘세탁물 전량 위탁’ 제도가 자칫 거액의 환수 처분으로 이어질 수 있어 운영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단순히 세탁물을 외부로 보냈다는 사실보다, 해당 업체가 법적으로 요양원 세탁물을 처리할 자격이 있는지가 환수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25년 10월 서울고등법원은 의료기관 세탁물 처리업체에 세탁물을 맡긴 요양원에 대해 ‘적법한 위탁’이 아니라고 판단하며 약 6억 7,000만 원의 환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의료법 위반 업체에 맡긴 세탁물은 ‘전량 위탁’으로 인정 안 된다
사건의 발단은 시흥시의 한 요양원이 위생원을 두지 않는 대신 외부 업체와 세탁물 전량 위탁 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요양원은 세탁물을 모두 외부로 보냈으므로 인력 배치 기준을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해당 세탁업체가 의료법상 ‘의료기관 세탁물 처리업자’라는 점에 주목했다. 현행 의료법과 관련 규칙은 의료기관 세탁물 처리업자가 감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 세탁물을 동일한 시설에서 처리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법원은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이 정한 ‘세탁물 전량 위탁’의 의미를 적법하게 세탁업을 할 수 있는 자에게 위탁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즉, 법적으로 일반 세탁물을 취급할 수 없는 의료 세탁 전문 업체에 물량을 넘긴 행위는 규범적으로 ‘위탁’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는 세탁물이 위생적으로 처리되지 않을 경우 수급자의 건강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입법 취지를 반영한 결과이다.
시설 내 소량 세탁도 ‘전량 위탁’ 요건 위반
원고 측은 위탁 계약과는 별개로 요양보호사들이 입소자의 위생을 위해 소량의 개인 의류만 자체적으로 세탁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법원은 위생원을 배치하지 않으려면 세탁물 전체를 예외 없이 외부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단 일부분이라도 시설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세탁했다면 이는 ‘전량 위탁’ 요건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특히 운영자가 해당 업체의 법적 한계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정황이 포착되면서, 의무 해태를 탓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건비 지출 주장과 개정 고시 소급 적용도 모두 기각
환수 금액 중 상당 부분이 실제 종사자의 인건비로 지출되어 원고가 실제 수익한 바 없다는 주장 역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장기요양기관이 지급받은 급여비용 중 일부를 인건비로 지출하는 것은 법령상 의무일 뿐이며, 이를 부당청구액에서 제외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또한 2024년부터 시행된 완화된 가산 산정 기준 역시 정책적 변화에 따른 것일 뿐, 과거의 위반 행위에 소급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위탁 업체의 자격증명 확인은 운영자의 필수 의무
이번 판결은 요양시설 운영자들에게 위탁 업체를 선정할 때 단순한 비용 논리를 넘어 법적 적격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무거운 과제를 던졌다. 박병철 변호사는 "외부 업체와 계약 시 해당 업체가 일반 세탁물을 적법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시설과 면허를 갖추었는지 사업자등록증과 신고증을 꼼꼼히 대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결국 "어디든 맡기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인식은 시설 운영의 근간을 흔드는 거액의 환수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전국의 요양기관 운영자들은 현재 계약 중인 세탁 업체의 적법성 여부와 시설 내 자가 세탁 발생 여부를 지금 즉시 재점검하여, 법적 리스크로부터 기관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