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수가라는 공동의 목표, 이제는 함께 목소리를 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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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윤채 한국장기요양지역협회연합 회장 |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법이 올해 3월 10일부터 시행됐습니다. 개정법은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한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그 범위에서는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돌봄 현장에서는 이 변화가 의미심장합니다.
정부는 수가와 각종 지침, 인력배치기준과 제도를 통해 장기요양기관과 돌봄 종사자의 근로환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인 3월 25일 정부가 돌봄 분야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논의하기 위한 노·정 협의의 틀을 만든 것도 이러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교육부·성평등가족부 등 관계부처와 노동계가 참여해 돌봄 노동자의 임금과 근로조건, 휴식권, 노동조합 활동 보장, 이동시간, 대체인력, 각종 수당과 안전 문제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제시하는 세부 요구에는 차이가 있지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돌봄 노동자의 처우를 지금보다 개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기요양에서는 종사자의 처우개선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한 가지 문제가 따라옵니다.
바로 수가입니다.
요양보호사의 임금을 올리고 수당을 확대하며 휴게와 교육을 보장하고 대체인력을 마련하는 데에는 결국 비용이 필요합니다. 기관에 충분한 재정적 뒷받침 없이 종사자 처우개선만 요구한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장기요양기관으로 넘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종사자 처우개선과 적정수가 확보는 따로 떼어놓을 문제가 아닙니다.
좋은 돌봄을 위해 종사자의 처우가 개선되어야 하고, 그 처우개선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려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적정수가가 함께 보장되어야 합니다. 현재 2027년도 장기요양 수가 역시 논의 중입니다. 장기요양위원회에는 공급자 대표가 참여하고 있지만, 수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현장의 요구가 저절로 충분히 반영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저임금은 오르고 인건비와 물가는 상승합니다. 인력배치기준과 서비스에 대한 요구 수준도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수가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기관은 경영 압박을 받고, 종사자의 처우개선 역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장기요양 현장의 시선도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시설 운영자들에게 노동조합은 편안한 존재만은 아니었습니다.
현장에서는 과거 기관 대표자를 직접 상대로 파업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임금인상을 요구했던 사례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노사 갈등으로 기관 운영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거나 대표자가 법적 분쟁에 휘말린 사례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일부 시설에는 아직도 “노조가 생기면 시설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그러한 현장의 경험과 우려까지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모든 노동조합을 과거의 경험만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달라진 환경을 놓치는 일입니다. 노란봉투법 이후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체가 누구인지 다시 묻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장기요양처럼 수가와 인력기준, 제도와 지침을 정부가 결정하는 분야에서는 기관 대표와 종사자만을 서로 마주 세워 놓고 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수가가 부족한데 기관에 임금만 더 지급하라고 요구하면 노사가 충돌합니다. 그러나 정부에 충분한 수가와 재정을 요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 지점에서는 기관과 종사자가 반드시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관은 적정수가가 필요하고,
종사자는 적정임금이 필요합니다.
좋은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일할 사람이 필요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기관이 필요합니다. 결국 서로 연결된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용자 대표인 협회와 노동자 대표인 노동조합의 관계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이라고 무조건 불온시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노동조합의 모든 요구가 기관의 현실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는 협상하면 됩니다.
그러나 적정수가 확보와 돌봄 종사자의 처우개선이라는 공동의 목표에서는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공급자 대표 몇 사람만의 노력으로 충분한 수가를 확보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별도의 노·정 협의체까지 구성해 돌봄 종사자의 처우개선을 논의하고 있는 지금, 노동계의 목소리는 앞으로 장기요양 정책과 재정 논의에서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협회 역시 노동조합을 단순히 경계할 상대가 아니라, 사안에 따라 공동의 요구를 정부에 전달할 수 있는 대화 상대인지 살펴볼 때입니다.
종사자의 임금을 누가 얼마나 더 줄 것인가를 놓고 노사가 다투는 구조에서 벗어나, 그 임금을 제대로 지급할 수 있도록 국가가 얼마의 수가를 보장할 것인가를 함께 묻자는 것입니다.
좋은 돌봄에는 비용이 듭니다.
그 비용을 기관의 희생이나 종사자의 저임금으로 메우는 방식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2027년 장기요양 수가를 논의하는 지금, 필요한 것은 노사 간의 오래된 경계심만이 아닙니다. 종사자 처우개선과 적정수가 확보라는 공동의 목표 앞에서 누가 더 큰 협상력을 만들어낼 것인지, 이제는 장기요양 현장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행동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