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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관리 부주의로 입소자 사망…요양시설 내 ‘약 혼용’ 사고 경각심 커져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 금고형

요양시설에서 약물을 잘못 복용하게 해 입소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과 관련해,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에게 법원이 금고형을 선고했다. 이번 사건은 장기요양기관 내 약물관리의 중요성과 더불어, 연하장애를 동반한 고령자의 식이·약물 관리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환자의 약물을 바꿔 투여한 과실…법원 “업무상 과실치사 인정”

대구지방법원 형사부는 11월 6일, 경북 경산 소재 한 요양원에서 근무 중이던 간호조무사 A씨(55세)와 요양보호사 B씨(59세)에게 각각 금고 8개월을 선고했다. 두 사람은 2021년 근무 중, 한 입소자에게 다른 환자의 약을 투약하여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에 따르면 간호조무사 A씨는 입소자별로 나눠 놓은 약을 별도 안내 없이 선반 위에 두었고, 이를 본 요양보호사 B씨가 대상자 확인 절차 없이 약을 전달해버린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약을 잘못 복용한 입소자 C씨는 이후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고, 약 한 달 뒤 폐렴으로 사망했다.

법원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를 인용해, 잘못 복용된 약물이 의식 저하 및 흡인성 폐렴의 발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해당 약은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성분이 포함돼 있었으며, 연하 능력이 약화된 고령자에게는 흡인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소견이 반영되었다.

약을 ‘갈아서’ 주거나, ‘혼합’해서는 안 되는 이유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또 하나의 문제는 약물 투약 방식의 안전성이다. 요양시설에서는 어르신이 알약을 삼키기 어려워한다는 이유로, 약을 분쇄하거나 갈아서 음식에 섞는 사례가 빈번하다. 그러나 이는 의약품의 약리작용을 변화시키고, 부작용을 증가시킬 수 있는 행위이다.

특히 다수의 약물은 위에서 서서히 흡수되도록 코팅되어 있거나, 방출 속도를 조절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 분쇄 시 약효가 한꺼번에 방출되어 중추신경계 억제, 저혈압, 의식저하 등 심각한 부작용이 유발될 수 있다. 따라서 약을 갈아 투약하는 것은 반드시 의사의 처방 또는 약사의 지시 없이 행해서는 안 되는 금기 행위다.

연하장애 어르신, 수분 섭취도 ‘점도조절’이 생명선

흡인성 폐렴의 위험은 약물뿐 아니라 물과 같은 액체 섭취 과정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고령자나 치매 환자의 경우, 삼킴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묽은 액체를 그대로 마실 경우 기도로 흘러 들어가 흡인성 폐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최근 의료‧요양 현장에서는 점도증진제를 이용한 수분 공급이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다. 점도증진제는 액체의 점도를 높여 삼킴을 보다 안전하게 하도록 도와주는 제품으로, 미세흡인을 줄이고 폐렴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일선 현장에서는 여전히 “물은 약보다 안전하다”는 인식 아래 점도 조절 없이 일반 물을 그대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로 인한 침묵의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약 하나, 물 한 모금도 생명과 직결”…장기요양시설의 근본적 전환 필요

이번 판결은 단순한 실수로 끝낼 수 없는, 돌봄 시스템의 구조적인 한계를 다시 한 번 드러낸다. 약을 누구에게 어떻게 투약할 것인지, 복약 전후 어르신의 상태를 어떻게 관찰할 것인지, 물 한 잔도 어떤 방식으로 제공해야 하는지 등, 장기요양기관에서는 일상처럼 반복되는 행위 하나하나가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관리 행위임을 인식해야 한다.

장기요양기관은 내부 교육을 통해 약물관리 지침과 식이안전 원칙을 반복적으로 숙지시키고, 연하장애가 있는 어르신에게는 반드시 점도증진제를 사용한 수분 제공이 기본이 되도록 시스템화해야 한다. 또한 약을 갈아 복용시키는 관행은 즉시 개선되어야 하며, 필요시 의사와 약사로부터 정식 지시를 받아 대체 약제나 투약 방법을 조율해야 한다.

사망 사고는 누구나 처음 저지를 수 있는 ‘작은 실수’에서 시작된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 모두 형사처벌 전력이 없었던 종사자들이었다. 법원 역시 양형 과정에서 이들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회적 책임감을 일정 부분 참작했다. 하지만 어르신의 목숨을 잃게 만든 ‘작은 실수’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장기요양 현장은 이제 더욱 정밀하고 과학적인 돌봄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 감에 의존한 경험이 아닌, 근거에 기반한 관찰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약을 잘못 준 것이 단순한 실수로 보이지 않도록, 매 순간 ‘약이 곧 생명’이라는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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